퇴색된 '화합의 정치'…尹대통령, 이재명과 회담서 135분 내내 '평행선'

데일리한국 2024-04-29 19:32:50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영수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영수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데일리한국 박준영·이지예 기자]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첫 회담이 소득 없이 끝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이 '협치의 첫 발걸음'이라고 치켜세운 반면, 민주당은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며 평가 절하했다. 윤 대통령 취임 후 721일 만에 제1 야당 대표와의 만남이 성사되면서 '화합의 정치'가 모색되길 바랐던 기대가 물거품이 된 모양새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29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열고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민생 문제와 국정 현안을 논의했다는 데 가장 중요한 의미를 둘 수 있다"면서 "민생 문제에 대해 깊이 있으면서도 솔직하게 허심탄회한 대회를 나눴고, 총론적·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이 수석은 "야당과의 협조·협치의 첫 발걸음 내디뎠다”며 “이번 만남이 정치의 복원이라는 총선에서 표출된 민심을 수용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대통령실은 갈등이 첨예한 정국을 정상화해 정치를 복원하고, 여야 간 협치를 위해 선의와 성의를 갖고 회담에 임했다"며 "소통과 협치가 지속될 수 있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이날 용산 대통령실 2층에 마련된 윤 대통령의 집무실에서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이 대표는 비공개 차담으로 전환되기 전 모두발언에서 원고를 꺼내 18분 동안 꺼내 읽으며 윤 대통령을 오목조목 비판했다. 별도의 합의문이 나오진 않았지만, 두 사람은 기본으로 설정해 놓았던 '1시간'을 훌쩍 넘긴 2시간15분 동안 민생 현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은 의과대학 정원 증원을 골자로 한 의료 개혁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또한 이날처럼 소통의 자리를 종종 갖자는 데도 합의했다. 윤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해 '여·야·정 협의체'와 같은 기구가 필요하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민생이 가장 중요한 정치적, 정책적 현안이라는 데도 인식을 같이 했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정책적 차이만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윤 대통령은 이 대표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공약으로 제시했던 민생회복지원금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민생회복지원금은 전 국민에게 1인당 25만원, 4인 가구 기준 100만원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것이 골자다. 이 수석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물가 금리나 재정 상황 등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면서 "지금 상황에선 어려운 분들을 더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또한 윤 대통령은 소상공인 지원 방안과 서민 금융 확대 방안에 대해서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을 먼저 시행해야 한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이미 추진 중인 사안이 있는 만큼, 야당이 제기한 부분은 필요에 따라 여야 협의를 통해 논의해도 늦지 않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아울러 윤 대통령 이 대표가 이태원 참사에 대한 특별법을 수용해야 한다고 지적한 데 대해선 "사건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선 공감한다"면서도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에서 영장청구권을 갖는 등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어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같이 논의하자"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영수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영수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대통령실이 이날 회담을 '소통'과 '화합'을 도모하는 자리였다고 평가했지만, 민주당은 혹평을 쏟아냈다. '소통'을 위한 자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는 지적이다.

박성준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국회에서 브리핑을 통해 "(대통령실의)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이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민주당이 주장한 민생 회복이나 국정 기조 전환과 관련해 전환의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말했다.

또한 "총선에서 윤석열 정권의 일방 독주에 대한 부분이 심판을 받았는데 회담 중 (바뀌겠다는) 의지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실망했다는 말씀드린다"고 밝혔다. 박 수석대변인은 이날 회담이 2시간15분 동안 진행된 데 대해서도 "윤 대통령의 답변이 상당히 길었다"며 "85(윤 대통령) 대 15(이 대표) 정도 됐다"고 전했다.

박 수석대변인은 "이 대표께 소회를 듣고 싶어서 물었더니 답답하고 아쉬웠다고 했다"며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다음번 회담에서는 의제를 좁혀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두 차례 열린 준비 회동에서 대통령실과 민주당 측은 의제 설정 여부를 두고 신경전을 벌였으나, 이 대표가 '제안을 두지 말고 다양한 의견을 나누자'는 대통령실의 입장을 수용하면서 회담이 성사됐다.

천준호 민주당 당대표 비서실장은 "오늘 영수 회담의 의미는 민주당이 민생 회복과 국정 기조 전환을 강조했다는 것"이라며 "일단 소통의 문을 열었다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대표께서 말씀하셨다. 다음에 만남이 이뤄진다면 정말 실천하고 답을 찾는 자리가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의제도 미리 조율하고 실천하자고 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의제를 2~3개라도 좁혀 이야기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회담은 오후 2시4분부터 2시간15분 동안 진행됐다. 대통령실에서는 정진석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 홍보수석이, 민주당에서는 진성준 정책위원회 의장과 천준호 대표비서실장, 박성준 수석대변인이 배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