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학서 親팔레스타인 시위대 수백명 체포돼…경찰과 곳곳 충돌

연합뉴스 2024-04-26 04:00:05

에머슨대 108명 연행·경찰 4명 부상…USC 93명·텍사스대 34명 체포

컬럼비아대에선 협상 중…"대학들 졸업식 앞두고 시위대 진압 서둘러"

25일(현지시간)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에머리대에서 경찰에 체포되는 시위대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임미나 특파원 = 미국 대학 캠퍼스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간의 가자지구 전쟁과 관련, 미국의 친이스라엘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가 격렬해지는 가운데 시위대 수백명이 경찰에 체포됐다.

미 전역의 대학 캠퍼스 곳곳에서 경찰은 시위대를 강제 해산시키려 진압 수위를 높였고, 학생들이 이에 거세게 저항하면서 양측 간 몸싸움과 실랑이가 이어졌다. 특히 대학 측은 다음 달 졸업식 시즌을 앞두고 교내를 정리하기 위해 경찰 투입을 서두르고 있다고 미국 언론들은 전했다.

◇ 미 동부부터 서부까지 학생 시위대-경찰 대립 격화

25일(현지시간) 미 동부의 보스턴 경찰국에 따르면 전날 밤부터 이날 새벽까지 보스턴의 에머슨대에서는 시위대 108명이 경찰에 체포됐고, 학생들이 이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경찰관 4명이 다쳤다.

CNN 계열 지역방송 WHDH의 영상에는 진압 장비로 무장한 경찰이 밤새 시위대를 해산시키려 시위대를 몰아가는 모습이 담겼다.

온라인에 퍼진 여러 영상에는 학생들이 서로 팔짱을 끼고 우산을 이용해 경찰에 저항하는 모습과 경찰들이 시위자들을 바닥으로 떠미는 모습 등이 담겼다.

에머슨대는 이날 수업을 모두 취소했다.

로스앤젤레스 경찰국(LAPD)에 따르면 전날 서던캘리포니아대(USC)에서도 시위대 93명이 체포됐다. 이 대학 내 체포 과정에 부상자는 없었다고 경찰은 전했다.

LAPD는 대학 측의 요청에 따라 경찰력을 캠퍼스에 계속 배치하고, 신분이 확인되지 않은 사람들이 교내에 들어와 해산하지 않을 경우 무단 침입 혐의로 체포하겠다고 경고했다.

텍사스주 공공안전부는 전날 오후 9시 기준으로 텍사스대 오스틴 캠퍼스에서 시위와 관련해 34명이 체포됐다고 밝혔다.

이 캠퍼스에는 시위가 시작된 직후 기마대를 포함해 진압봉 등으로 무장한 텍사스주 경찰이 대규모로 출동해 학생들을 강제로 해산시켰으며, 이 과정에서 물리력이 행사되기도 했다.

이곳에서 체포된 이들 중에는 지역 매체 폭스7의 사진기자도 포함돼 있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지역 방송 영상에는 이 기자가 현장에서 쓰러져 피를 흘리는 모습이 포착됐고, 경찰은 응급 의료진을 불렀다.

텍사스대 오스틴 캠퍼스에서 경찰에 체포되는 학생들

텍사스대 3학년 학생 데인 어쿼트는 경찰의 교내 진입과 시위대 체포가 "과잉 대응"이라고 비난하면서 경찰이 무력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평화롭게 유지됐을 것"이라고 AP통신에 말했다.

경찰이 떠난 뒤 텍사스대 시위대 약 300명은 잔디밭에 앉아 경찰과 학교 측에 항의하는 구호를 외쳤다.

샌프란시스코의 북쪽에 있는 캘리포니아 주립 폴리테크닉대 훔볼트 캠퍼스에서는 시위대가 사흘째 건물 안에서 바리케이드를 치고 농성을 벌이고 있다. 학교 측은 지난 주말 이후 캠퍼스를 폐쇄하고 수업을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하버드대에서는 학교 측이 대부분의 출입문을 잠그고 광장 진입을 차단하는 등 시위를 차단하려 애썼지만, 전날 '하버드 학부 팔레스타인 연대위원회' 활동금지에 반대하는 집회가 열렸고 시위대가 농성 텐트 14개를 설치했다.

미국의 수도이자 정치의 중심지인 워싱턴DC에서도 친팔레스타인 시위가 본격화해 캠퍼스 내 텐트 농성이 시작됐다.

25일(현지시간) 미 워싱턴DC 조지워싱턴대의 조지 워싱턴 동상에 시위 팻말이 놓여 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이날 오전 조지워싱턴대 캠퍼스 중심부에 약 30개의 시위 텐트가 설치됐다. 시위대는 캠퍼스 밖 거리에서도 시위를 벌이며 "지금 당장 (가자지구) 점령을 끝내라"는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워싱턴DC의 또 다른 대학교인 조지타운대에서도 이날 오전 약 100명의 시위대가 교내 힐리홀 계단에 모여 "팔레스타인에 자유를"이란 구호를 외쳤다.

앞서 지난 22일에는 뉴욕대에서 시위대 133명이, 예일대에서 48명이 각각 경찰에 연행됐다.

컬럼비아대에서는 지난주부터 경찰의 진압으로 시위대와 학교 당국 간의 갈등이 첨예해진 가운데 전날 양측이 협상 시한을 48시간 더 연장해 협상을 계속 진행중이다.

컬럼비아대에는 텐트 약 60개가 남아있으며 경찰이 캠퍼스를 둘러싸는 금속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신분증을 확인하는 등 보안이 엄격하게 유지되고 있다.

공화당 소속의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은 전날 컬럼비아대를 방문해 네마트 샤피크 컬럼비아대 총장의 사퇴를 요구하면서 시위가 빨리 진압되지 않을 경우 "주 방위군을 투입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라고 말했다.

23일(현지시간) 뉴욕 컬럼비아대 캠퍼스에서 텐트 농성 중인 시위대

◇ 학생들 "가자전쟁 반대, 이스라엘과 관계 끊어라" 요구

학생들은 각 대학이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을 지원하는 기업들,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이스라엘 자체와도 거리를 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학교마다 조금씩 내용은 다르지만, 대체로 학생들은 ▲ 이스라엘에 무기를 공급하는 업체와의 거래 중단 ▲ 이스라엘 기업 등으로부터 돈을 받는 자금 매니저로부터의 기부금 수락 중단 ▲ 이스라엘로부터 받는 자금을 더 투명하게 공개할 것 ▲ 시위로 징계받거나 해고된 학생·교직원에 대한 사면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하버드대 학생과 교직원으로 구성된 '점령지 팔레스타인에서 하버드를 빼내자'(Harvard Out of Occupied Palestine)라는 이름의 단체는 이날 성명에서 하버드가 이스라엘과 결별하고 "팔레스타인의 학문적 이니셔티브, 커뮤니티, 문화에 자원을 재투자"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25일(현지시간) 미 조지워싱턴대에 들어선 친팔레스타인 시위 텐트

상당수의 캠퍼스에서 친팔레스타인 시위는 '팔레스타인의 정의를 위한 학생 연합' 등 학생 단체에 의해 조직되고, 이슬람교와 유대교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과 교직원이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위 주최 측은 폭력성을 부인하고 있지만, 일부 유대인 학생들은 캠퍼스에서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며 시위대의 반유대주의적인 구호로 인해 불안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시위대와 대치 중인 각 학교 측은 연중 최대 행사인 졸업식을 앞두고 공권력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고 있다고 미 언론은 전했다.

미국의 주요 대학은 대부분 5월에 졸업식을 연다. 학교 중심부에 시위 텐트가 가득 들어찬 상태로 졸업식을 열 수는 없다는 것이 학교 측의 입장이다.

AP통신은 "졸업식이 다가옴에 따라 각 대학이 시위를 빨리 끝내기 위해 경찰을 신속하게 불러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25일(현지시간) 조지워싱턴대에서 "팔레스타인에 정의를" 외치며 시위 중인 학생들

mina@yna.co.kr